4차 산업혁명 시대. 공유경제의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필요한 미래인재란 무엇일까요? 변하는 시대에 맞춰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우리아이, 뭐 해 먹고 살죠?


학창시절 우리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말을 줄곧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시대 부모님들은 이른바 모범생의 모습이되야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꼭 모범생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대가 바뀐 것이죠.


사실 공부가 제일 쉬었다는 저자의 약력에 놀라며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모험생의 양육법을 제안한다는 사실에 의아했습니다. 최고의 성과로 모범생이 되어봤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살아보니 모범생이었어도 별것 없더라 하는 생각이었을까요? 


교육멘토와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앞으로 필요한 것은 졸업장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론 요즘에도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배우고 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교육의 목표도 바뀌어야 합니다. 

제 주변에도 유치원생인 아이를 붙잡고 조기교육과 사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아이들을 학원키드로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의미없이 배움을 받아들이기 보다, 각자의 '성향'에 맞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봅니다. 


저는 아이가 모험심이 큰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첫째인 아들녀석은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찬 아이지만, 내면은 소심하고 여린아이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망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7살이지만 실패하는 것이 무서운 것인지그냥 부모에게 의지하고, 책임을 피하고 싶은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존감이 약한 아이도 아니거든요. 어린 마음에 칭찬만 듣고 싶어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모험생은 궤도를 이탈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피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규칙과 규범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미래형 인재=창의형 인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표현력과 창의력이 중요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과 경쟁하는 시대에는 공감능력이 탁월한 창의적인재가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불과 몇년 전 이세돌과 인공지능과의 바둑대결은 전 세계적인 이슈였습니다. 천재적 재능과 노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인성뿐 아니라 소통과 협력, 공감, 감성, 창의, 비판적 사고력, 예술등 융합능력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미래예측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저도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자녀를 키우는 것에서도 대화를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우리 큰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이의 의지와 욕구를 북돋아 주는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양육태도 때문인지 우리 첫째는 남자아이임에도 섬세한 감성을 지녀, 타인을 위해주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감이란, 타인의 상황속에 나를 투입해서 내가 느끼는 타인에 대한 이해라고 합니다. 

나이는 아직 7살에 불과하지만, 다른사람의 감정을 먼저 읽어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주어서 너무 기특합니다. 


"양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것인지, 부모의 양육방향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부모가 좋은 멘토가 되어 준다면, 공부만 잘하는 아이, 또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저 또한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다른나라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요?

자녀교육에 관한 강연이나 책을 읽었다면, 유대인의 교육법이 많이 듣고 참고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법'이라는 것도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를 발전시키는 질문, '하브루타 교육법'이란 자녀와의 대화와 질문이 중요하고, 지시가 아닌 존중의 대화를 통해 인성을 기르고,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비판적사고력을 키워주는 유대인의 교육법입니다. 누군가와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낯선 부모세대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명한 대화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만약 자녀가 어떤 일에 실패를 했다고 가정한다면, "노력했지만 결과가 안 좋았구나. 실망하지 말자."라고 하기보다 "결과가 안 좋았구나. 어떤점이 힘들었어? 엄마가 무엇을 도와줄까?"라며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학원다니기를 힘들어 한다면 "그럼 다른학원으로 옮기자."라고 하는것 보다는 "조금더 해보자. 그러고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때 다른것을 생각해보자."라며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정보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은 아이의 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일전에 읽었던 푸름아빠 최희수님의 배려있는 교육과 아들러박사의 '아들러 심리학'의 내용이 머리속에 연관되어 떠올랐습니다.

아들러박사의 "실패는 나쁜것이 아니라 소중한 체험"이라는 원칙하에 일단 실패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잘될까?'하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부모의 잘못된 보호가 실패를 두려워 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는 어떤 책의 글귀에 주목하게 됩니다.


순종적이고 말 잘듣는 아이가 착한아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살았던 우리시대의 모습보다는 '도전해라', '행동해라' 하며 피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실패를 한다해도 손해의 범위는 아주 적을 수 있습니다. 또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10대시절 가수였지만 현재는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고있는 '이소은 아버지'가 자녀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한마디 "잊어버려!(Forget about it!)"가 떠오릅니다.


모험심은 오늘이 만드는 내일의 습관이라고 합니다.


돈많은 재벌가 3세들의 갑질이 이슈입니다. 자녀교육, 자식교육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다짐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제 곧 3월 입니다. 3월이 되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처음 등원을 하게되기도 하고, 형님반이 되어 새학기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매년 이 시기가되면 엄마들의 가장 큰 걱정과 관심은 '우리아이가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우리아이가 다른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입니다. 아무래도 엄마와 단 둘이 있던 '1:1'의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게 해야 하는 '1:다수'의 공간에 아이들이 들어가게 되면 아이들도 긴장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 '집에서처럼 행동하면 어쩌지?'하는 걱정과 '선생님이 잘 받아주고 달래줄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우리 엄마들의 최대 숙제와 가장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죠.


우리아이의 기질은 어떤가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기질이 어떤지를 파악하는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만 3세 이전의 아이에게는 '성격'이라는 말 대신 '기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합니다. 아이의 감정, 행동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괄적인 의미로 '기질'이라고 표현합니다. 


저희 큰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외부강사님을 모셔서 '부모교육' 강의를 매년 진행하는데, 얼마전 이 강의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던 부분이 바로 우리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부모가 제스쳐를 취해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기질등에 따라 육아의 방법도 차이가 생기고, 학습의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것입니다.

아이들의 기질은 순한아이, 까칠한아이, 느린아이로 나눈다며, 어떤기질의 아이가 좋은(?)것 같냐고 강의를 듣는 학부모에게 묻습니다. 사실 강의를 듣기 전에는 우리 아이의 기질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기질이란 것이 아이를 키우는데 중요한부분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우리아이는 순해요.'

순한아이가 착한 아이일까요? '순하다'라는 단어만 생각했을 때는 단순히 엄마를 귀찮게 하지않는, 말을 잘듣는 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단체생활을 하게되어도 친구들과 부딪치지 않는 무던한 성격이 좋을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순하다는 것은 그저 좋기만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선배언니와 함게 가족동반 여행을 떠난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언니의 아이는 책을 들고와 계속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언니에게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좋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소심해서 고민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네요. 순하고, 소심한게 왜 고민이 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언니가 한마디 더합니다. "친구들이 괴롭혀도 그냥 참아." 심지어 친구가 머리채를 끌어당겨도 그냥 참았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반복되어 틱현상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순한 아이일수록 자율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하니 그냥 순하다고, 부모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고 즐거워만 할 일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아이는 느긋해요."

사실 순하다는 것과 느긋한것의 차이를 잘 몰랐습니다. 조금 느려도 까탈을 부리지 않고 끝까지 해내면 좋은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집에서 여유롭고 느긋한 아이와 단체생활에서도 늦장을 부리다가 지적을 당하는것과는 약간 부모가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위축되고 적응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한 아이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흥미가 있는 활동에는 집중력을 크게 발휘하는데, 환경변화에 늦게 적응하는 편입니다.


"우리아이는 까탈스러워요."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던지 까다로운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아이들은 까다로움을 알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맞춰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사실 부모입장에서 키우기 가장 힘든것은 까탈스러운 아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까다로운 아이일수록 세상을 자기에게 맞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강점을 가진것입니다. 육아를하는 부모로서 몸은 힘들어도 오히려 아이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아이가 편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아이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비단 까탈스러운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이의 기질때문에 필요한 부분이 아닌 부모가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즉, 모든아이에게 적절한 부모의 반응이 필요한 것입니다.

까다로운 아이일수록 새로운것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합니다. 호기심은 아이의 지능과 두뇌발달과도 영향이 있다고 합니다. TV에 나오는 영재아이들이 기질적으로 까다로운 아이가 많은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 없는 걸까요? 찾아보니 단순히 아이의 기질이 발달해 성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기질은 '개인의 감성적인 측면' 성격은 '기질을 기반으로 한 감정과 의지의 전체의 표현'이라고 하네요.


부모의 양육 태도와 방법, 가족간의 관계등이 기질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부모는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여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타고난 기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구요. 주양육자로서의 책임감에 등떠밀려버리면 아이와 엄마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점 유의해야 겠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를 새로운 기관에 맡기게 될 때, 우리아이의 성격이나 식습관등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너무 이슈들이 많아서 보육기관에서도 아이들의 개별적인 특성에 따라 되도록 맞춰 케어를 한다는 뜻이겠죠. 이런 작성표를 보내봐야 얼마나 지켜주겠어 생각하지 말고, 꼼꼼하게 적어 보내면, 적어도 아이를 돌봐주는 선생님이 '몰랐어요.'이따위의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하고 양육하면 우리아이도 영재로 키울 수 있을지 않을까요? (^^)


오늘은 최근에 다시 읽은 '아들러 박사의 용기를 주는 자녀법'이란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오스트리아 정신과의사인 알프레드 아들러박사가 제창한 아들러의 실천 심리학은 실패는 나쁜것이 아니라 소중한 체험이라는 큰 틀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셈이죠. 아들러 교육법의 원칙은 실패를 했다고 해서 야단을 치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잘되지 못한 결과에 유감을 표하고, 일단 실패를 받아들인 다음,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잘될까?"라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 일레트릭(GE)의 잭 웰치 회장도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성공은 결코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이렇게 키우고 싶다는 롤모델이나 목표가 있으세요? 그냥 공부잘하는 아이, 운동잘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나요?

저는 우리아이가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자녀교육을 열심히 하는 엄마일수록 자식을 실패에서 지켜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위험한 일은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하면서 성과가 오를 수 있는 방법만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성적이 늘 1등인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심지어 사회에서까지 1등이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반드시 어떤 시점에서는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실패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잉보호란 결코 사치스러운 것을 많이 사주는 것이 아니고,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아이를 극진히 보호하며 키우는 것이라고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실패를 두려워 하는 아이와 두려워 하지 않는 아이의 차이는 뭘까 생각해 봅니다. 점점 쉽게 좌절을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데, 착한아이보다 대처능력이 있는 아이가 더 크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대처능력'이란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죠.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라도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아이라면 응용력이 없는 매뉴얼적인 인간이 될 뿐이겠죠.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마마보이, 파파걸로 우리 아이를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체험"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들보다는 살아온 날들과 경험이 쌓여 '이대로 가다가는 실패할것 같다'라고 예측을 하기도 쉽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성인이 되었어도 언제나 걱정하고 챙겨줄 존재인것 같습니다. 조금은 벗어난 이야기지만 부모님과 함께 제주에 살고있는 제 동생은 부모님의 가게를 함께 도와가며 지내는데, 사실 이제 제 동생이 없다면 부모님 힘으로는 가게를 운영하기가 힘에 부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 가게가 이사를 했어야 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최소한의 개입만 하시겠다며 동생이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시더군요. 이사와 동시에 서류 및 기타등등 새로 신경써야 할 것이 무지 많은데, 부모님과는 달리 경험이 없는 제 동생은 그걸 해나가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물론 그걸 지켜보면서 친정엄마는 잔소리를 무지 했었다고 합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혀본 경험이 없었던 제 동생에게는 이번일이 참 힘들고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 

부모가 실패를 미리 예측했다고 해서 그것을 막기보다는, 실패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우선 '실패했음'을 아이와 함께 인정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 또 그러러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지'를 아이와 대화하고 성장해 나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다른 방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이웃과 왕래를 하면서 양육품앗이를 하지 않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이웃사람이나 친척의 관계가 희미해져 가기 때문인데, 그래서 자녀교육이 이제는 엄마의 책임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게 엄마 생각데로 모든게 잘 풀리던가요? 실제로 자녀교육은 작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처음부터 자녀교육을 잘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누차 얘기하지만 부모가 되는 모든것을 미리부터 알고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도 시행착오를 지나 배우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실패했을 때 '나의 자녀교육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 자체도 실패는 나쁜것이라는 착각을 버리세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는 무조건 야단을 치지 말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그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라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가게되면 '위험해!', '그렇게 하면 안되지!', '안돼!'라며 자꾸만 아이를 막게 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엄마도 피곤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아이도 나가고 싶은 의욕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아이가 밖에 나가 놀다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를 저질 렀다면 당장 엄마가 뛰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싶겠지만, 아이가 이 문제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사과를 할수 있겠니 묻고, 혼자 가지 못할 경우, '엄마가 같이 가줄까?'라고 도움을 주는데, "엄마가 사과를 하는건 아니야. 사과는 네가 해야 한단다."라고 확실하게 해두라고 합니다. 억지로 사과를 시키지 말고 스스로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죠. 얼마전 층간소음문제로 아랫집에서 쪽지를 주셨다는 글을 블로그에 적은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저희는 아이가 직접 내려가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할 수 있게 했고, 그로 인해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부모가 지적하지 않아도 행동이 사뭇 조심스러워 졌음을 느낍니다.


아이에게는 무조건 사과라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마음을 키워줘야 합니다. 아이를 제쳐놓고 부모가 대신 사과해 버리거나 무리하게 데리고 가서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사과해야지'마음을 먹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만약 아이가 물건을 자꾸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잃어버릴 때마다 사주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됩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사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고, 무조건 사주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 입니다.  또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벌보다는 규칙을 주라고 합니다. 사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과하는 것으로만 끝나버리면 아이는 약속을 깰 때마다 사과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결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큰아이도 평소 작은일에 사과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조금만 제 표정이 이상하다 싶으면 '미안해요.'. '사과를 받아주세요.' 이런말을 하는데, 그 때마다 규칙을 주지 않고 '알겠어.', '조심하자.'대답했던것이 실수였나 봅니다. 앞으로는 아이가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규칙을 주고, 단지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는것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겠습니다.


인생은 스스로가 정해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조언을 받았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가르쳐주세요.

아이가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부터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엄마몰래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갈 수도 있죠. 만약 아이가 꾀병으로 학교에 가고싶어 하지 않는다면, 아이 스스로 선생님과 통화를 하도록 한다던지, 엄마가 선생님과 통화 후 '선생님이 문병오실지도 모르겠구나, 거짓말을 하니까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지?'하고 말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은 안돼.'라고 하기보다는 '거짓말을 하고 난 후의 들켜버릴것 같은 불안함과 기분 나쁜 초조함'등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면, '역시 거짓말을 하면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구나.'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의 인격과 행동은 별개라는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기본입니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 할 수는 있지만, '나쁜행동'은 있지만 '나쁜아이'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거짓말을 왜 했느냐에 집중하지 말고, '어떤목적을 위해 한 거짓말'인지에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첫째로는 야단을 맞지 않기위한 거짓말일테고, 둘째는 친구를 감싸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다른이를 골탕먹이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거짓말을 무조건 혼내기 보다는 부모와 정직하게 대화하지 못한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에 더 집중을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칭잔" 받으며 자란 아이 VS "인정" 받으며 자란 아이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 칭찬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껍니다. 



하지만 칭잔하는 것에만 집중을 하게 되면 아이는 타인의 평가에 마음을 쓰고, 단지 칭찬을 듣고싶어서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잘못되었어도 말이죠. 그리고 칭찬을 듣게 되지 못했을 경우는 불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칭찬의 역효과' 입니다. 어떻게 칭찬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관련글] 페이지에 자세히 적어놨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인정을 해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타인의 평가에 좌지우지 되지않으며, 설령 비판을 받게 되어도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정을 한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에 관계 없이 그 아이의 행동이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도와줘서 큰도움이 되었단다.' 이렇게 말이죠.


2대 1대 7의 법칙

아들러 심리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법칙이 바로 '2대 1대 7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10명중에 2명이 있고, 무슨 수를 써도 친해질 수 없고 어긋나는 사람이 1명, 나의 태도에 따라 관계가 바뀔 수 있는 사람이 7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좋은 사람도 모두 그사람을 좋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TV프로그램에 '혜민스님'이 나와 '내 이름이 혜민인데 스님법명을 왜 혜민으로 했냐.'며 항의전화를 받았다는 사례를 이야기 했던것이 문득 떠오르네요. 많은 사람들이 혜민스님의 따뜻한 명언에 마음을 치유받고, 힐링을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좋은 사람도 모두 그사람을 좋아 할 수는 없다는게 이 얘기인가 봅니다. 백인백색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기 마련인데,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것이지, 그들의 생각이 모두 틀린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헐뜯고 싸우고 책임을 떠 넘기는 TV속 막말러들이 떠오릅니다. 서로 비판을 하고 싸우고 이기는 것이 자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는 하는데, 정말 "뭣이 중헌디!"라고 한마디 던지고 싶네요.


서툴게 격려하기 보다는 아이의 기분을 알아주는 편이 아이의 마음도 빨리 진정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힘든 경험을 했을 때, 캐묻기 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편이 아이의 고민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엄마에게 털어놓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는 입을 열겠죠. 이때 부모는 아이의 고민에 미리 결정을 해버리거나, 무리하게 캐묻는 섣부른 행동은 안된다고 합니다. 만약 무슨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하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나쁜것은 아니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만두는 방식입니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을 보셨나요? '슬픔이'와 '기쁨이'가 '라일리'의 핵심기억을 찾아 떠나 겪는 일들 중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입니다. 라일리의 상상속 친구인 '빙봉'이 로켓을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 때 '기쁨이'는 기쁜생각을 떠올리고 웃어보라며 서툰격려를 합니다. 하지만 '빙봉'은 더 서럽게 울 뿐이고, 그런 '빙봉'을 '슬픔이'가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줌으로써 일으켜 세워줍니다. 기쁜마음도 중요하지만, '슬프겠구나'공감해주며 위로하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상호의존성'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우리의 감정, 느낌, 생각등의 경험들은 언제나 외부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동시에 존재하게 되고, 우리를 둘러싼 외부세계는 늘 변화하고 그에따라 아이가 변화하고 생각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기였을때는 기쁘기만 했지만, 좋아하는 것을 잃고, 헤어지고 하면서 슬픔의 감정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는 것이죠. 아이의 감정에 귀기울려주고 진정 알아주려 한다면 아이는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실패는 행동의 결과가 안좋았기 때문이지, 인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아주 작은 성장이라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자신감을 키워나갈 때,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여 '열심히 했구나.'해주면, 아이는 '이것이 열심히 한다는 것이구나.'하고 깨닫게 되고, ''열심히 하면 엄마가 인정해 주는구나'라고 알게 되고 다음에도 잘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 스스로에게 결정하고 행동 할 수 있도록 해야 겠습니다.

저도 다른이들에게 피해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품에 안고 키우는편이었는데, 결국 그로인해 혼자 결정하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러의 용기를 주는 심리학을 잘 기억해서 실천해보면,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질 줄아는 어린이로 성장 할 수 있겠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어른으로 클 수 있겠죠?



아이를 키우면서 몸으로 직접 부딪쳐 배우는것도 많지만, 책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육아관련서적이 그래서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고, 육아맘들의 배움처가 되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직접 일고 느낀바를 포스팅했지만, 본문을 잊지 않기 위해 책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어느덧 큰아이가 7살이 되고 작은아이가 3살이 되었습니다. 사실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계속 직장을 다녔던 터라, 오롯이 엄마의 역할에 전담하게 된건 사실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두사람이 벌던 월급이 한사람의 월급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식구수가 늘게 되면서 아무래도 생활이 조금씩 쪼들리고 빡빡해 졌습니다. 아무리 아껴쓴다고 해봤자 이번달을 아끼면 다음달에 왕창 통장이 털리는것 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고, 점차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밖에 나가게 되면 아무래도 커피한잔이라도 사먹게 되니, 그조차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사실 평소 술자리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것을 좋아하던 제게 이것은 엄청 큰 변화된 모습이었죠.



그런데 문득 내가 이까짓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살고있나 하면서 짜증이 밀려오고, 아냐 아끼고 살면 좋지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내안의 감정의 기복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둘째를 출산하고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간단한 우울증 검사를 했었는데, 그땐 아주 행복한 우울증이 전혀 의심되지 않았던 엄마였는데, 둘째가 태어난지 22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집을 치워도 5분이면 다시 치우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고,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옆에서 아이는 자기를 봐달라며 칭얼거릴 때는 하늘로 솟았다 땅으로 내리꽂는 내 극심한 감정의 기복에 나조차 두려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육아 스트레스에 조금은 위험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울고싶니? 엄마도 울고싶다. 

겉으로는 아닌척, 괜찮은척 해보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더 아파오네요. 친정엄마나 아빠가 우울감에 빠진 저 위하신다고 자주 전화하시는것도, 남편도 제게 마음 다독이러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는것도, 짜증섞인 화를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눈치를 보는 아이들의 모습도 너무나 속상하고 주변에 미안할 뿐입니다. 

저의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주변에 흘러 나쁜영향을 주는것 같아 빨리 마음을 다잡고자 노력을 해야지 생각해 봅니다.


「엄마만 느끼는 우울증」

아이를 키우다보면 행복한 순간이 많아요. 하지만 그만큼 우울하고 힘든 순간도 많은게 현실이죠. 삶에 낙이 없는 듯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기분이 가라앉고 매사에 의욕이 없고,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고, 과도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불안 초조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이런것들은 우울증의 일반적인 증상이예요. 여기에 극심한 외로움,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 아이의 건강에 대해 과도한 걱정, 이러다가 아이를 해칠 것 같다는 강박 등이 더해지면 엄마특유의 육아 우울증, 주부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어요.  (엄마를 위한 감성매거진. 미즈코치 블로그 중에서...)


심란한 마음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저같은 육아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나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위안도 받습니다.

이런 우울한 마음을 날려버리고자 공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제 친구중에 국카스텐의 열성 팬이 있어 친구와 함께 락공연장을 몇번 찾았습니다. 심지어 전라남도 영암F1경기장에서 했던 "영암 락페스티벌"에도 함께 찾아, 신나게 공연관람하는 모습이 TV에 박제되기까지 했죠. 하지만 공연이 끝난 다음날은 여지없이 아이들과 온종일 씨름하고 있게되니, 똑같은 현실의 모습에, 바뀌지않는 현실에 또 지치게 됩니다. 물론 제 삶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의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또한 다른이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니까요. 


요즘 뉴스를 보면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엄마의 우울증과 자존감이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얼마전 광주에서 집에서 자고있던 어린 3남매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초동수사에서 엄마의 실수로 벌어진 실화다, 아니다 방화다 얘기가 많았는데, 오늘 뉴스에서 엄마의 방화혐의가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생활고에 빚독촉 시달리다 방화를 저질렀다는 보도를 듣고 또 한번 쯧쯧 혀를 차게 되네요. 누구나 부모가 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지만 그 아이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리는 절대 누구한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엄마로써 참 답답합니다.


스스로 외면하는 엄마 우울증

엄마가 겪는 우울증은 일반 우울증보다 심해지기 쉬워요. 그 이유는 애초에 인식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예요. 엄마들은 당연히 좋은 엄마'가 되고싶은데 거기에 자신의 의지로 우울함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생각, 우울증에 걸린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러다보니 우울한 감정이 느껴지더라도 '우울증은 아닐 거야'라고 애써 덮으며 외면합니다. 병을 아예 인식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니 남에게 표현하기도 어려워요. 친정 엄마, 심지어 남편에게도 이런 생각과 감정, 경험을 말할 수 없죠. 이렇게 우울증을 방치하면 점점 심해지면서 호미로 막을것을 가래로 막게 됩니다. (엄마를 위한 감성 매거진. 미즈코치 블로그 중에서...)


나를 위한 시간보내기

엄마가 되면 어느 직업보다도 근무시간이 길다고 하죠. 집은 출·퇴근이 없는 우리의 직장입니다. 제가 남편에게 늘 하는 얘기가 "당신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되지만, 나는 퇴근이 없잖아. 당신이 직장에서 힘들고 피곤한것도 알고는 있지만,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해."입니다. 예전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때는 사실 조금 살만했습니다. 그 살만하다는 것이 금전적인 부분보다는, 내 숨이 트이는 곳이 있어서 였나 봅니다. 큰아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 당시 회사에 출근을 하면 일을 하는 동안은 아이가 생각나기 보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눈뜨면 집이고, 정신차려봐도 집이고, 집을 떠나지 않는 내 생활반경과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너무 지쳤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독서와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예전같이 않게 항상 찌뿌둥 하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위해서, 그리고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죠. 아직 둘째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내지 않기 때문에 낮에도 아이와 함께 집에있어,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온 시간에 요가를 갑니다. 직장인타임 있잖아요. 일주일에 두번 남편에게 시간맞춰 퇴근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문화센터에 갑니다. 


그리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남편과 상의하여 주말시간을 빼둡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아이들 신경쓰느라 밥을 먹는건지 얘기를 하는건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없기때문에 주말시간을 이용합니다. 회식이다, 동네친구 모임, 고등학교 동창모임, 대학동창모임 등 남편은 어쩜이렇게 모임이 많을까요. 그런시간 어쩔수 없이 저의 독박육아 시간은 길어집니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물론이죠. 아빠도 그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엄마도 엄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꼭 이시간에 뭔가를 만들고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기보다는 충분히 잘 쉬고, 보충할 수 있어야 좋은 에너지를 충정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하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요-나만의 육아방식 만들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돈이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내 아이는 조금 더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것이 부모들의 다 같은 마음일 테니까요. 같은 또래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먹고, 입히고, 생활하는 모든것에서 부터 나와는 조금은 다른것을 느끼고 그로 인해 좌절감이 들 때가 생깁니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적박탈감이겠죠. 

제 경우는 교육에서 그런 감정을 느껴 흔들렸던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 태어나면서부터 책을 집에 많이 들이게 됩니다. 저희집에도 적당한 분량의 책이 있는데, 전집을 산 경우도 있고, 지인에게 물려받은 책들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책을 많이 들여놓아라.',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어휘력도 좋아지고 더불어 사고력확장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책 한질 주문하는것이 제게는 생각보다 경제적 부담이 컸습니다. 외벌이로 벌어오는 남편의 월급만으로 여유자금을 만들어 저축하는 것은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유자금이 없는데 카드할부로 책을 사는것은 제 마인드로는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카드할부는 결국 빚이다! 스튜핏~!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해야하는 책장사들이나 학습지선생들은 조금의 여지만 보이면 아주 닥달을 하더군요. 당장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 아이의 미래가 망가질것처럼 말이죠. 그들은 본인의 영업실적이 우선이지 우리집의 가정경제는 안위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상 아이를 키워보니, 전집을 들여놓는다고 해도 그 한질 중에 아이는 특정 몇권만 반복해가며 읽습니다. 본인이 흥미를 느낀 몇권의 책을 책장이 찢어질정도로 좋아하고 들여다 보는 모습을 보니, 굳이 전집을 사줄 필요는 없겠구나 싶습니다. 일단 필요한, 아이의 흥미를 느낄만한 책은 집근처 도서관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아이와 "이 책이 무척 재미있나 보네. 전집을 사주면 읽을 수 있겠니?"하고 아이와 얘기 후 사줘도 늦지 않더라 이겁니다.


저도 한때는 아이 친구엄마들과 교류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과의 만남에 올인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성향도 다르고 각자 삶에 추구하는 모습이 다르다보니, 결굴 그들을 만나는 시간이 제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처럼 해주지 못하는 내모습에 자책하기도 했으나, 과연 그 모습들이 도움이 됐을까요?

7살인 우리 첫째는 아직 학원을 두루 다니지 않습니다. 조금 통통한 체격때문에 다이어트 삼아 태권도를 다니는 것 뿐입니다. 아이 친구들 중에는 벌써 요일별로 학원을 세군데나 다니지만, 지금부터 무리하게 학원보내고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아직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선행학습한다고 학원까지 보내면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마 매일 남편과 돈이 부족하다며 싸우게 되겠죠. 아니면 이미 가장의 역할로 어깨가 무거운 우리 남편에게 또 짐을 짊어지게 할 수 없으니, 제가 아이 학원비를 벌기위해 인형 눈이라도 붙이는 부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육아방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육아서적을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보통 육아지침서에는 '나는 이렇게 했어요.'하며 실질적인 예시를 통해 육아관이나 어떻게 아이를 대하면 좋은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그들의 방법이 내 아이에게는 먹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나 엄마나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육아의 늪에 빠진 당신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 블로그 이름은 '토닥토닥 야미요미 하우스입니다'. 2017 티스토리 블로그 결산에서 한줄로 내블로그를 설명할때 이렇게 적었었죠. 

육아의 늪에 빠진 당신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육아우울증을 풀기 위해, 뭐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기에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엄마니까 우울하면 안 된다!'가 이니라 '엄마니까 우울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종종 우울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힘들면 꼭 남편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의 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말도 않고 '당신이 뭘 잘 못했는지 몰라?' 얘기해봤자 그들은 맥락없음에 어이없어할 뿐입니다.


깊은 늪에 빠져버린 것 같은 육아후유증, 우리 슬기롭게 현명하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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