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아내의 명절증후군'에 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은 명절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며느리와 취업준비생, 그리고 미혼, 비혼인 그들의 이야기가 뉴스기사로 줄을 잇습니다. '시월드를 퇴사하다, 며느리사표', '불행한 A급 며느리보다 행복한 B급 며느리 될래요', '2030 명절 호텔콕 "맘편히 쉬고싶어요"'등의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이미지출처:pixabay>

결혼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명절을 지내고 난 후 소위 '흉을 보는' 불만섞인 이야기가 좀 더 많은 편인데, 그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편이 자기 집이라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속편하게 TV만 보더라.", "나도 친정갈라고 준비하는데 시누이온다고 보고가래. 나도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시는데, 그럼 우리 올케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까?", "남편이 나 몰래 따로 돈을 더 드리더라.", "애도 안봐주신다면서 자꾸 둘째 낳으래.", 얼마전 결혼한 친구는 아직 결혼안한 남편의 누나가 '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말과 눈빛에 정말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결혼전부터 명절이면 시집간 친언니네 식구까지 온가족이 모여 여행을 다녔는데, 본인이 결혼한 첫해부터 그 여행이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명절이라고 시댁에 다녀오면 부부의 싸움이 되고, 심지어 노년이 되어 졸혼을 선언하기도 한다죠. 어렸을적에는 사촌들을 오랜만에 본다는 사실에 그저 좋기만 했는데, 며느리가 되어버린 지금은 명절이 마냥 좋지만은 아닌것은 사실입니다.

                                            

왜 며느리는 일꾼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걸까요? 

우리가 시댁에 가서 주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사위는 처가에 와서 주방에 들어가나요? 사위 눈치보는 장모는 있는데, 며느리 눈치보는 시어머니는 없습니다. 물론 이게 '모 아니면 도'같은 흑백논리도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보고 자랐고 우리 엄마의 엄마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걸 수도 있겠다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그렇기 살아왔기 때문에 며느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며느리도 딸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당신의 딸도 며느리인데, 시댁에서 일꾼처럼 부려먹으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결혼을 하고 처음 몇년간은 시부모님께 사랑받고자 엄청 애를 쓰는 며느리들을 봤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드리고, 시어머니가 적어주신 가족 대소사와 심지어는 시조카들의 생일까지 챙겨야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네 시어머니는 "나는 요즘 시어머니다. 개방적인 마인드다." 하시더니 하고싶은말은 할말대로 다하고, 친해지기 위함이라며 이것저것 요구하는게 어찌나 많던지 다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처음부터 시어머니와 친해지고자 너무 노력했던 모습이 되려 불찰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너무 친한사이는 기대와 실망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요. 조금은 부족했던 모습이 서운한 감정이되어 돌아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시월드와 며느리는 너무 가까우면 안되는 걸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친정엄마라면 서운한마음 말씀드리며 투정도 부리겠는데, 시어머니께는 그러지를 못하니 불만이 쌓이고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결국 시댁과는 연을 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부부불화를 피하기 위해 시댁에 가는것을 포기하고, 일부러 당직근무를 자처하는 직장인이 있다는 뉴스를 읽고 달라진 명절분위기를 실감합니다.


물론 요즘은 며느리 눈치를 본다는 부모님도 많더군요. 손주가 이뻐서 했던 모습에 아이버릇 나빠진다며 한마디 밷는 며느리때문에 눈치가 보이고, 인터넷에 떠도는 시월드에 관한 험담들을 익히 알고있다며, 자식에게 부탁같은거 안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명절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우울감에 빠지는 며느리, 아내, 엄마가 있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봅니다. 며칠전 읽었던 책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정우열 지음)'에 남편의 공감능력에 관련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그저 공감받고 싶어 얘기를 꺼냈는데, 남편은 '됐어'라는 한마디에 아내는 거절당했다 느끼며 상처를 받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해결하지 못할 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느끼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화를 회피하는 것 입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반복되는 그 시간동안 감정적으로 흥분해 있는 아내를 상대하는 것이라, 미리부터 그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생기는 현상입니다. 해결하기 힘들어 피하는 것은 남자의 본능이고, 공감받지 못하면 그 상처를 분노로 바꾸면서 더 쫓아가는 것 역시 여자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이것을 했을 때 남보다 나에게 좋은것이 무었인지 따져보아야 어떤 행동의 동기가 생기는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남자는 칭찬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동물이고, 그 칭찬은 아내로부터일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비록 위 이야기는 육아에 관련한 내용이었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충분히 명절에도 일어날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위한소리, 내 말 듣지않는 너에게는 뻔한잔소리'라던 아이유(with 임슬옹)의 '잔소리'라는 노래가 자꾸만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 했던가요?  

내편이 되라고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주방에서 무슨일이 있던 신경쓰지 않고 소파와 한몸이 되어 있는다거나, 처가에 가기로 약속한 시간을 아내와  상의도 없이 바꾼다거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만 들이켜지 마시고, 힘든 아내와 어머니 어깨 한번씩 번갈아 주물러 주는건 어떨까요? 도저히 손이 오그라들어 그런것 못하겠다 하시면 맛있는 커피라도 수고했다 하며 한잔 건네줄 수 있는 센스있는 남편을 바래봅니다. 이게 다 남편 당신을 위한 현명한 대처법, 편안함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 생각하세요.


저희 시부모님은 딱 적당한 관심과 관여만 합니다. 제사도 지내지 않고, 명절이면 산소에 모여 카톨릭 연도를 바치는것이 전부입니다. 식구들 먹을 음식은 준비하지만, 제사음식만큼 으리으리하게 준비하는 것도 아니죠. 딱 적당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딱 적당한 수준에 남편이 관여를 합니다. 저와 성격이 매우 비슷한 손윗 시누이가 있는데, 언니와 무척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시누이와의 관계를 보며 친구들이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의아해 하더군요. 그냥 언니가 언니친정부모님(제게는 시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것이, 제가 저의 친정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것과 똑같은 딸의 마음이다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착한며느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착하고 말잘듣는 순종적인 며느리로 살기에는 제가 너무 힘들어요. ^^

서로가 다르게 몇십년을 살다가 만났는데 하루아침에 변할수는 없습니다.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내게 맞춰주기를 바라지 않는것, 그럴수도 있다 생각하며 마음을 얽매지 않는것, 아마도 이게 시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제가 편하고자 저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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