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맥주를 좋아합니다. 사실 주종이 맥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고 박나래님처럼 술먹는 것을 좋아하고, 술먹는 분위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서로 모이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한창때만해도 나름 나 자신을 '아기간'이라 칭찬하며 함께마신 다른사람들보다 숙취도 없고, 말끔히 다음날을 보낼 수 있다는 웃긴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활에 복달복달 치이고, 찌들어버린 지금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지만 말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해보다 발견한 "언니는 맥주를 마신다"는 책제목을 보자마자 꼭 내가 읽어야할 책이라는 강한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요즘 보는 책이라고는 육아관련서적인데, 사실 엄마의 자존감에 관해 요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시점에서 지난날의 나를 잠시나마 추억하게 끔 해주는 책제목이었습니다. 대출이 되어 있는 상태라 대출예약을 걸고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대출이 가능하다는 알림문자를 확인하고 큰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한번 휘리릭 넘겨보는데 읽기 쉽게 글반그림반이네요.^^ 사전정보 없이 그냥 제목만 보고 빌린터라 반신반의 했는데, 대출예약까지 걸고 빌려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작가의 개성이 고스란히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것 같습니다. 위트있는 말재주에 센스넘치는 그림, 그리고 그녀의 지식까지 감탄을 하며 책을 읽어 내려갑니다. 그래 즐기고 마실꺼 나도 작가처럼 프로페셔널하게 마셔볼것을, 그냥 그동안 나는 너무 술만 퍼먹은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동네와 이웃마트의 수입맥주코너를 섭렵하고 조금 더 먼곳까지 맥주를 구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는 그녀, 신상맥주가 들어오는 핫플레이스까지 알려줌에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제가 늘 먹어보던 맥주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두자 생각했던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제주도의 로컬맥주인 '제주위트에일'을 먹어보고, 그것을 잘 소개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진 지식이 너무 짧다보니 알려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음을 느꼈습니다. 그냥 기본정보없이 느낌만 알려주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도서 '언니는 맥주를 마신다'는 우리나라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수입맥주를 각각의 히스토리와 함께 소개해 주고 있는데, 아직 책에 소개되지 않은 맥주도 있으니 우리나라에 수입된 맥주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알수있게 합니다. 작년 맥주무역적자가 1억5000달러나 됐다고 하니 새로수입된 맥주가 얼마나 많은지 , 우리나라에서 수입맥주의 수요가 얼마나 늘었는지 대충 알수는 있을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활형' 맥주애호가 입니다.

책을 펼치면 흔한 동네언니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트의 세계맥주코너에 빼곡히 진열된 다양한 맥주를 보며 흐믓해 하는 우리지만, 결국 사들고 오는건 몇캔에 만원하는 저렴이 맥주라는 우리. 그런 그녀들을 생활형 맥주애호가라고 작가는 칭합니다. 이 책은 맥주덕후를 타깃으로 하는 전문적인 책은 아니라고 작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이미 충분한 '마트 맥주가이드','마트 맥주설명서'입니다. 사실 책을 펼쳐 몇장을 넘기지 않고 마트로 향했습니다. 맥주가 너무 먹고 싶더군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맥주를 한잔하면서 남편에게 책에게 책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 풀어봅니다. 괜시리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책에서는 맥주의 라벨을 보는법과 맥주의 발효법에 따라 라거(Lager), 에일(Ale), 람빅(Lambic)으로 달라지는 맥주의 분류법들에 관해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소개해 드린 '제주위트에일'은 이름에도 붙어 있듯이 에일(Ale)맥주입니다. 에일은 라거에 비해 탄산이 적고, 과일향, 초콜릿향 등 다양한 풍미와 개성이 느껴져 취향껏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고 소개합니다. '제주위트에일'은 귤피향이 향긋하게 난다고 알려드렸습니다. 1664블랑이나 제주위트에일, 파울라너헤페바이스 그리고 써머스비까지, 제가 좋아하는 맥주는 과일향이 나는 종류였다는것을 책을 읽어가며 깨닫습니다. 써머스비는 사이더(Cider)로 사과를 발효해 만든 1~6%의 알코올 함유 과실주입니다. 마셔보면 탄산음료 '데미소다 사과맛'이 알코올을 함유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술을 잘 못하는 분들이 접하기에 부담없는 맛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밀맥주를 좋아하는 편인데, 밀맥주가 100%밀이 아니었네요. 50%의 보리와 50%의 밀을 재료로 섞어 만든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맛있는 맥주를 추천하는 방법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각 맥주마다 라벨에 숨겨진 깊은 뜻을 알려주는데, 예를 들어 기린맥주는 '기린'이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영물이고 심지어 공자의 어머니가 공자를 임신했을 때 어린이가 기린을 타고오는 태몽을 꿨다는 설화를 소개하며 그런의미로 행운이 필요할 때 마실만한 맥주로 추천하고, 소개팅에서 폭탄을 만났을 때 쓰린속을 달래며 마실 맥주, 열받아서 욕하고 싶을때 마실만한 맥주, 썸남에게 작업걸 때 추천하는 맥주 등 우리가 맥주를 마셔야만 하는 이유를 잘도 찾아냈습니다. Thank You!!


맥주는 건강에 좋다

술을 좋아하고, 또 즐기는 제가 꼭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작가는 꼭 듣고 싶었던 이 말에 아주 타당한 근거를 대가며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작가의 지식을 조금 빌려보자면, 맥주는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금식기간에 영양분을 보충하고 건강을 유지했던 식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맥주를 '액체빵' 혹은 '흐르는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 홉, 효모의 효능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놀라웠던 것은 홉의 효능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홉이라는 것이 맥주의 재료로만 알았기 특별히 효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홉은 여성호르몬을 촉진시키는 성분이 있어 피부의 탄력에 도움이 되고, 부인과질환에 걸린 확률을 낮춰준다고 합니다. 또한 홉에는 신경안정성분이 들어있어 예민, 불안,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잠을 잘 자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수면장애가 있거나 잠을 못자는 사람을 위해 홉으로 만든 수면유도제를 팔고있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책에 있는 내용 중 어떤 맥주를 재미있게 묘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동네짱과 맞붙어서 싸웠다. 치열한 싸움의 끈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뜨거운 우정만이 우리사이에 남은것 같은 맥주', '원빈가 현빈이 한꺼번에 내게 들이내는 느낌의 맥주' 이게 무슨맥주를 설명하는 내용일까요?

바로 "슈나이더 마이네 호펜바이세 탭 5"이라고 합니다. 탭번호에 따라 맛이 틀리다고 하니, 꼭 마셔보고 싶은 맥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작가는 본인이 가진 맥주상식을 '얕은 지식'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있는데, 너무 겸손한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우아하게 맥주내공을 뽐내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대표맥주인 기네스맥주의 경영철학과 히스토리, 덴마크의 맥주회사 칼스버그의 훈훈한스토리와 이 기업이 세계맥주시장에 공헌한 부분까지 어떻게 저런 내용을 다 알수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 작가는 다양한 맥주를 마셔보며 각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사소하게 인생을 즐겨봅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의 맥주취향을 깨닫게 됩니다. 또는 취향을 알고싶어 맥주를 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하는, 생각지도 못한 의지를 북돋아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추천에 따라 나만의 <맥주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1. 시메이블루(벨기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공들여 만든 맥주라는 이 맥주는 숙성될수록 맛이 좋아진다고 하며, 기본적으로 2년은 넘여야 맛이 든다고 합니다. 걱정안해도 될것은 라벨에 생산연도가 새겨져 있다고 하네요.

2. 파울라너 살바토르 도펠북(독일): 부드럽고 달짝지근하며 진득한 맛의 맥주라니 도저히 궁금해서 못참겠습니다. 

3. 민타임 초콜렛 포터(영국): 작가의 추천사가 이렇습니다. '미치겠다. 언니들, 이맥주 꼭 마셔봐.' 이보다 더 강력한 추천사가 어디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맥주도 버킷리스트에 저장~!

4. 탄제린 위트(미국): 귤 밀맥주라는 이름답게 감귤향이 화사하다고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달콤한 감귤맛이 아닌 초록빛의 시큼한 맛이라니 도전욕구가 생깁니다.

5. 듀벨(벨기에): 소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할만한 맥주라는데, 설마 우리나라에서 출시되었던 '카스 레드' 맛과는 다르겠지 기대해 봅니다.^^

6. 웨팅어 헤퍼바이스(독일): 분명 마셔본것 같은데 맛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싸지만 무려 괴테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즐겼던 맥주라고 합니다. '가격대비 최고의 성능'의 맥주라고 합니다.

7. 세븐브로이(한국): 중소기업 양조브랜드로 고급스럽고 다양한 맥주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제주위트에일'도 로컬맥주로 현재는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언젠가는 세븐브로이처럼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있겠죠? 중소기업 양조브랜드 세븐브로이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이밖에도 김빠진 맥주를 써먹는 아이디어도 소개합니다.

주방의 기름때와 묵은때를 청소할 때, 전자레인지 내부를 청소할 때, 고기를 재울때나 수육고기 삶을 때 물 대신 맥주를 넣어도 누린내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수하거나 목욕할 때, 심지어 꿀을 섞어 팩도 할 수도 있다는 생활 속 레시피에 박수를 보냅니다. 


늘어가는것은 뱃살 뿐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맥주한잔으로 육아스트레스를 날려보려 합니다. 오늘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단, 지나친 음주는 안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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